아들아, 너의 길을 가라

빨리 내려가서 게임을 하겠다고 혼자 먼저 정상을 다녀온 1호. 12/11 관악산 산행에서.

1호가 내년이면 다니게 될 학교는 집에서 꽤 먼 거리다. 차를 타고서도 30분은 걸리고, 대중 교통을 이용하면 버스와 전철을 갈아타고 1시간 좀 넘게 걸린다. 아침 등교는 데려다주고 오후에는 혼자 오게 할까 생각이었지만 그러지 못한 날도 있을 듯 하고. 어쨋든 입학 전 두어번 정도는 함께 등하교길을 답사 차원에서 다녀볼까 했다.

그러다 졸업을 앞두고 부쩍 자란듯한 모습을 보며. 스스로 찾아보게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서는 집에서 학교까지 가는 방법을 조사해보라고 했다. 기한을 주지 않으면 잊어버릴까 해서 언제까지 할거냐고 물었더니 화요일까지라 답한다.

언제나처럼 기다리다가 아무 말이 없어 자기 전 물었더니 잊었노라고. 그래서 다시 언제까지 할거냐고 물었더니 이런저런 이야길 하다가 목요일까지라고. 그리고 당연히(!) 목요일도 지났다.

옆에 앉혀 놓고 같이 검색을 하면서 방법을 알려주는 것은 어렵지 않다. 주말이든 휴일에 시간을 내서 함께 다녀오는 것도 문제될 것은 없다. 이제 초등학교를 졸업하는 아이에게 ‘자기주도적’인 삶을 가지라고 스트레스를 줄 필요는 없다. 이미 이 주제를 가지고 많은 압박을 가해왔다는 생각도 든다.

내가 그랬듯, 대부분 그렇듯이 ‘때’가 되면 홀로서기를 할 것이다. 나의 약했던, 지금도 약한 모습을 아이에게서 발견할 때 ‘화(火)’를 내는 것은 그만해야 한다. 어쩌면 나의 나약한 ‘내면아이’로 인한 것일 수도 있고, ‘방어기제’일 수도 있다. 나고 보고 자란 것들이 있어 많은 부분 나와 닮을 수는 있겠으나 나와 동일시 하지는 말자.

아직 입학까지는 2달 넘게 시간이 있어 급한 일은 아니다. 그리고 버스 정류장을 찾지 못하거나, 엉뚱한 버스를 타거나, 내릴 곳을 지나치거나. 그러다 보면 알게 될 것이다. 늘 정해진 길로만 다니는 것 보다 스스로 길을 찾아내길 바란다. 잘 못할 수도 있고, 실수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배우기 바란다.

아들아, 너의 길을 가거라.

….

그런데 약속한 기한은 지켜야지? 응응??

말 잘 듣는 아이로 키우지 않겠다.

넘어질까 걱정하지 말자. 다시 일어나면 된다. image from pixabay

‘세월호’ 침몰 사고가 발생했을 때, 뉴스를 제대로 볼 수 없었다. 어쩌다 접하게 되는 짧은 언론 보도 만으로도 감당이 되지 않을 만큼 충격이 컸기 때문이다. ‘자식 먼저 보낸 부모 마음’은 고스란히 가슴으로 밀려왔고 그저 피할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흐른 후 하나 둘 접하게 된 이야기 중 가장 마음을 무겁게 했던 것이 “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는 말을 따른 아이들의 모습이었다. 눈물이 나서 견딜 수 없었다. 그 무렵이었던 것 같다. ‘말 잘 듣는 아이로 키우지 않겠다.’는 생각을 가진 것이. (아직도 생각과 행동 차이가 많은 것은 나의 부족함 때문이다. 계속 나아가겠다.)

『강수돌 교수의 더불어 교육혁명』- 이하 ‘더불어’로 표기-은 큰 아이가 입학할 중학교에서 주최한 ‘신입학부모를 위한 새로 배움터(줌으로 진행되었다)’에서 전달된 추천 도서다. 2015년 출판된 것으로, 2003년에 나온 『 나부터 교육혁명 』-이하 ‘나부터’로 표기-의 후속편이라 한다. ‘더불어’를 읽는 동안 ‘나부터’의 내용도 대략 짐작은 가지만 별도로 읽어볼만 할 듯 하다.

‘더불어’는 아래 5개의 챕터로 구성되어 있다.

  1. 교육 현실, 무엇이 문제인가?
  2. 인생의 내비게이션 – 어떻게 살아야 행복할까
  3. 교육 혁신, 우리도 할 수 있다
  4. 사회 혁신 없이 교육 혁신 없다
  5. ‘나부터’ 실천과 ‘더불어’ 실천이 희망이다

그리고 그 앞에 프롤로그로 「’세월호’ 사건과 개념혁명」이 자리한다. 이미 여기에서 생각의 합치가 일어났기에 책의 내용을 받아들이기에 부담은 없었다.

팔꿈치 사회, 차별의 내면화, 경쟁의 내면화가 일상화 된 현재 사회 구조에서, 시대를 정당화 하고 그에 순응하기를 강요하는 교육은 부모 세대의 경험에서 시작된다.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 좋은 대학에 가지 못할까 걱정, 좋은 직장을 얻지 못할까 걱정, 그래서 생계가 어려워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 이런저런 걱정들로 시작된 현실 인식은 “자식 잘못 되기 바라는 부모 없다”는 논리로 나의 방식과 생각을 강요하게 된다.

나의 약한 모습을 아이에게서 발견하는 것을 못 견뎌 하거나, 내가 했던 실수나 잘못을 아이들이 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그러나 스스로 얻지 못한 깨달음은 얼마나 오래 갈 것인가.

아이들이 더 어릴 적부터 진정 자유롭게 자라왔는지, 그동안 자율성을 키울 기회가 많았는지 스스로 질문을 던질 필요가 있다. 그다음에는 과연 부모가 아이들과 함께 재미있게 놀았는지, 특히 컴퓨터나 스마트폰보다 더 재미있는 프로그램을 같이 즐겼는지 자문할 필요가 있다. 흔히 아이들과 ‘놀아주어’한다고 말하지만, 놀아주는 게 아니라 그냥 함께 ‘놀아야’ 한다. 즐길 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 아이가 놀이의 즐거움을 만끽하고 균형 잡힌 인성을 기르게 된다. 실컷 놀아본 아이는 노는 것과 배우는 것의 경계가 거의 없거나 혹 있더라도 균형을 잘 잡는다. 자기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를 잘 알기 때문이다.

『강수돌 교수의 더불어 교육혁명』 33~34p 中

머리로는 실컷 놀도록 놔둬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행동으로는 잘되지 않는다. “실컷 놀게 내버려뒀더니 엉망이 되었다.”, “다른 애들은 선행으로 어디까지 하는데 ‘기본(이 기본이 누구의 기본인지 모르겠다)’은 해야지.”.. ‘옆집 아줌마’의 현실, 인생, 사회 인식으로 보면 무책임한 부모가 되는 것은 한 순간이다. 거기서 중심을 잡으려면 아빠가 엄마와 동일하게 자녀의 교육이나 자녀와 함께 활동하는데 시간을 가져야 한다. (‘옆집 아줌마’ 이야기의 본질은, 아빠는 돈벌이 기계로 전락하고 동시에 엄마는 아이의 성적 관리자가 되어버린, 우리 모두의 뒤틀린 현실에 있다’고 책은 말한다)

‘어떻게 살아야 행복한 것인가’에 대한 문제는 저마다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책에서 말하는 사회, 공동체적 가치에 대해서도 생각이 다를 수 있지만 중요한 것은 ‘차이’를 인정한다는 것이다. 그 차이에 대한 존중과 이해가 교육 현장에서 진행된 사례를 소개한다.

‘우리도 할 수 있다.’에서 여러 사례를 소개하는데 오래전 소개되었던 영국의 썸머힐 학교에서 부터 캐나다의 센트렐텍 고교(책에 기재된 명칭으로는 검색되지 않는다, 정확한 명칭 확인이 필요할듯), 한국의 간디학교와 태봉고등학교 등이 거론된다(이에 대해서는 관련된 책을 소개하니 찾아서 읽어봐야겠다. 『 서머힐에서 진짜 세상을 배우다 』,『 작은 학교의 힘 』,『 흔들리며 피는 꽃, 제천 간디학교 』)

이와 같은 교육 혁신을 위해서는 사회 혁신이 우선 필요하다고 한다. 그리고 사회 혁신을 이루기 위해 ‘나’가 아닌 ‘더불어’ 실천을 말한다.

전체적으로 짧은 글들의 연속이고 실제 사례를 예시로 설명하고 있어 쉽게 읽히는 편이다. ‘혁명’과 ‘혁신’이라는 단어의 무게에 비해 4장과 5장도 큰 부담은 없었다.

머리로 이해하는 것과 실천하는 것은 다른 영역의 문제다. 늘 실천이, 꾸준함이 문제다. 더디더라도 계속 나아가겠다고 다시 새겨본다.